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하다.
정치를 시작하다.
2018년 박범계 의원으로부터 시의원 제의를 받았습니다. 두 차례나 거절했지만 “한 번만 도와달라”는 거듭되는 부탁을 받고 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그렇게 시의원에 출마했을 때에 박범계의 측근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 원을 요구 받았고, 이러한 불법적인 선거로 시작되는 지방자치의 현실을 시민들께 알렸습니다.
결국 이 2명은 구속되었고, 저는 사실상 공익제보의 대가로 민주당에서 제명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의원에 출마했을 때에 박범계의 측근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 원을 요구 받았고, 이러한 불법적인 선거로 시작되는 지방자치의 현실을 시민들께 알렸습니다.
결국 이 2명은 구속되었고, 저는 사실상 공익제보의 대가로 민주당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여성계의
비리를 제보 받다.
비리를 제보 받다.
무소속 대전시의원으로 있던 중 한 성폭력상담소가 피해자들에게 갑질을 한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성단체의 집회와 압력이 있었지만 끝까지 보조금사용내역 등 각종 자료를 받아냈고, 국민권익위 등에 고발하면서 해당 시설은 자진 폐쇄 했습니다.
당시 여성계의 문제점과 페미니즘이 연결되어 있으며, 시민단체들이 중앙정부부처 뿐 아니라, 지방정부에서 기생충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여성계의 문제점과 페미니즘이 연결되어 있으며, 시민단체들이 중앙정부부처 뿐 아니라, 지방정부에서 기생충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른미래당
혁신위 사태를 겪다.
혁신위 사태를 겪다.
여성계의 문제는 여성가족부의 문제로 귀결되었고, 무소속이던 저는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입당 제의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들의 문제점에 대해 가장 목소리를 많이 냈던 하태경 의원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른미래당에 입당했습니다.
입당 후 당의 내홍을 극복하기 위해 결성된 혁신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이곳에서 운명처럼 이준석과 유승민을 등에 업은 특정 계파들이 당권을 장악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당의 대변인을 맡아 중앙정치를 들여다 보며, 이들 계파의 여가부 문제 해결은 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문재인 정권에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당권 다툼밖에 하지 않는 이들을 보고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결국 혁신위 사태에서 청년정치를 가장한 깽판정치의 당권장악은 막았지만,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입법 거래를 하면서 총선 출마시 당비 1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마다하고 처음으로 탈당이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입당 후 당의 내홍을 극복하기 위해 결성된 혁신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이곳에서 운명처럼 이준석과 유승민을 등에 업은 특정 계파들이 당권을 장악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당의 대변인을 맡아 중앙정치를 들여다 보며, 이들 계파의 여가부 문제 해결은 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문재인 정권에서 힘들어하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당권 다툼밖에 하지 않는 이들을 보고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결국 혁신위 사태에서 청년정치를 가장한 깽판정치의 당권장악은 막았지만,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입법 거래를 하면서 총선 출마시 당비 1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마다하고 처음으로 탈당이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민주당의 텃밭에서
총선에 뛰어들다
총선에 뛰어들다
저는 이어 자유한국당으로 입당을 하였고, 거주지인 대전 유성을 지역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습니다.
야권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미래통합당’이 되었고, 현직 당협위원장이며 전 시당위원장 및 현직 국회의원과의 3파전으로 경선을 치러야 했습니다.
저는 청년정치, 여성정치를 거부하고, 청년벨트나 여성할당 인재영입 방식의 단수공천과 전략공천 대신 대전시민들로부터 제대로 평가받고 경선을 치르기로 한 것입니다.
경선에서 당당하게 1위를 했고, 본선에 출마했지만, 후일담을 들어보니, 특정 계파 정치인들은 이렇게 스스로 일어서고 1등으로 공천받은 저를 두고 끝까지 후보 교체를 주장했다고 합니다.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웠고, 보수정당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을 얻었음에도 민주당의 텃밭에서 5선의 장벽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청년정치, 여성정치를 거부하고, 청년벨트나 여성할당 인재영입 방식의 단수공천과 전략공천 대신 대전시민들로부터 제대로 평가받고 경선을 치르기로 한 것입니다.
경선에서 당당하게 1위를 했고, 본선에 출마했지만, 후일담을 들어보니, 특정 계파 정치인들은 이렇게 스스로 일어서고 1등으로 공천받은 저를 두고 끝까지 후보 교체를 주장했다고 합니다.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웠고, 보수정당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을 얻었음에도 민주당의 텃밭에서 5선의 장벽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정권의 폭정에 맞서,
원내보다 더 원내같이 싸운
원외위원장
원내보다 더 원내같이 싸운
원외위원장
예견된 결과였지만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총선 패배에 절망하는 전국의 국민들을 만나면서 ‘정권교체’의 열망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국민적인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법조인의 양심을 걸고 선거무효소송 대리인단에 참여하였습니다. ‘선거불복’, ‘음모론’ 프레임 공격이 충분히 예상되었지만,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데에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라는 사명감으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故박원순 서울시장의 희극적 죽음 다음날, 구국의 영웅이신 백선엽 장군께서 서거하셨고, 광화문에 분향소 마련에 서울시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나섰습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지역에 ‘달님을 영창으로~’라는 문구의 풍자 현수막을 걸었고, 대선 정국을 앞두고 삼중수소유출 사건을 통한 공포선동에도 원자력계 과학자들과 함께 막으려 애썼습니다.
국민적인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법조인의 양심을 걸고 선거무효소송 대리인단에 참여하였습니다. ‘선거불복’, ‘음모론’ 프레임 공격이 충분히 예상되었지만,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데에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라는 사명감으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故박원순 서울시장의 희극적 죽음 다음날, 구국의 영웅이신 백선엽 장군께서 서거하셨고, 광화문에 분향소 마련에 서울시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나섰습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지역에 ‘달님을 영창으로~’라는 문구의 풍자 현수막을 걸었고, 대선 정국을 앞두고 삼중수소유출 사건을 통한 공포선동에도 원자력계 과학자들과 함께 막으려 애썼습니다.
박범계, 조국, 정의연,
여성계와 싸워 전승한
유일한 사람 김소연
여성계와 싸워 전승한
유일한 사람 김소연
박범계는 측근 2명이 구속된 후 저를 제명시키고 오히려 자신이 명예훼손 당했다면서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이광범 변호사 팀을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여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왔습니다.
32개월간의 지난한 다툼 끝에 박범계는 저에게 전부 패소하였고, 소송비용까지 물어줘야만 했습니다.
조국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을 상대로 ‘하나하나 따박따박’ 민,형사 소송을 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 중 1명의 청년기자를 고소한 사건의 변호를 맡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 앞에서 조국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고 16시간의 변론 끝에 ‘무죄’의 판결 선고를 받아 조국을 굴복시켰습니다.
윤미향 사태의 핵심인 정의연의 이사로 있는 소녀상 작가부부는 자신들이 만든 강제징용 노동자상과 불법설치 및 일본인 모델 논란을 지적한 저에게 형사고소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지만, 모든 것이 사실임이 드러나 저에게 전부 패소하였습니다.
여성계의 비리와 보조금 부정사용을 밝혀내자 또다시 여성계는 저를 고소하였는데, 이 역시 전부 사실로 밝혀져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정의당이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을 운영하며 중증장애인들에게 인근 학교에서 나오는 잔반급식을 먹인 사건을 밝혀냈고, 지역화폐와 마을공동체, 각종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을 빙자한 시민단체들의 혈세 빼먹기 행태를 전부 사무감사 하였는데, 그때마다 늘 공격과 저항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무엇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혼자 싸우는 것 같아도 늘 정의로운 길을 응원하고 소중한 세금을 지켜주는 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우리 국민들이 제 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국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을 상대로 ‘하나하나 따박따박’ 민,형사 소송을 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 중 1명의 청년기자를 고소한 사건의 변호를 맡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 앞에서 조국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고 16시간의 변론 끝에 ‘무죄’의 판결 선고를 받아 조국을 굴복시켰습니다.
윤미향 사태의 핵심인 정의연의 이사로 있는 소녀상 작가부부는 자신들이 만든 강제징용 노동자상과 불법설치 및 일본인 모델 논란을 지적한 저에게 형사고소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지만, 모든 것이 사실임이 드러나 저에게 전부 패소하였습니다.
여성계의 비리와 보조금 부정사용을 밝혀내자 또다시 여성계는 저를 고소하였는데, 이 역시 전부 사실로 밝혀져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정의당이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을 운영하며 중증장애인들에게 인근 학교에서 나오는 잔반급식을 먹인 사건을 밝혀냈고, 지역화폐와 마을공동체, 각종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을 빙자한 시민단체들의 혈세 빼먹기 행태를 전부 사무감사 하였는데, 그때마다 늘 공격과 저항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무엇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혼자 싸우는 것 같아도 늘 정의로운 길을 응원하고 소중한 세금을 지켜주는 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우리 국민들이 제 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권교체 방해 세력과 맞서,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문재인 정권은 저의 모교인 민사고를 비롯한 자사고 폐지 등 교육분야부터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산업, 과학 등 대한민국의 모든 영역을 철저히 파괴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치 입문한지 만 3년간 현장에서 이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하고 투쟁해왔고, 이제 오직 정권교체를 위해 저의 모든 역량을 전부 동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권교체의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른미래당에서 혁신위 사태를 경험했던 저이기에, 현재의 당권을 장악한 새로운보수당 세력의 계획과 움직임이 예측되었고, 이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정치를 표방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노회한 정치를 하는 그들과 지지자들이 당을 망가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정권교체’라는 국민적 요구가 있는 상황에서 대선후보와 주변인들을 흔드는 당 대표와 그 세력들의 행태는 ‘제2의 혁신위 사태’를 방불케 했습니다.
특히, 재판기록으로 첨부된 검찰수사자료에 있던 ‘성접대‘ 기록에도 뻔뻔하게 버티며 정권교체를 방해하고 있는 당대표를 정리하지 못하는 정당에서 더이상 국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사태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정치 입문한지 만 3년간 현장에서 이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하고 투쟁해왔고, 이제 오직 정권교체를 위해 저의 모든 역량을 전부 동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권교체의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른미래당에서 혁신위 사태를 경험했던 저이기에, 현재의 당권을 장악한 새로운보수당 세력의 계획과 움직임이 예측되었고, 이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정치를 표방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노회한 정치를 하는 그들과 지지자들이 당을 망가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정권교체’라는 국민적 요구가 있는 상황에서 대선후보와 주변인들을 흔드는 당 대표와 그 세력들의 행태는 ‘제2의 혁신위 사태’를 방불케 했습니다.
특히, 재판기록으로 첨부된 검찰수사자료에 있던 ‘성접대‘ 기록에도 뻔뻔하게 버티며 정권교체를 방해하고 있는 당대표를 정리하지 못하는 정당에서 더이상 국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사태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제대로 된
정권교체! 정치개혁!
제가 하겠습니다.
정권교체! 정치개혁!
제가 하겠습니다.
청년정치를 표방한 노회한 구태정치인들이
보수의 이념에 찬물을 끼얹고,
무능력자들은 이미지정치에 매몰돼 국민을 기망하고
나이브한 웰빙정치로 감시와 견제는 뒷전이었으며
국가발전 저해에는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열망에 맞서 소모됨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개혁! 진짜 청년정치!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모습 그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보수의 이념에 찬물을 끼얹고,
무능력자들은 이미지정치에 매몰돼 국민을 기망하고
나이브한 웰빙정치로 감시와 견제는 뒷전이었으며
국가발전 저해에는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열망에 맞서 소모됨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개혁! 진짜 청년정치!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모습 그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